저질 체력과 다리 통증, 축적된 피로로 2시간 이상을 걷는 건 엄두도 나지 않았고, ‘산이란 올라가면 다시 내려오는 것이고 멀리서 보아야 이쁘다.’라고 항상 말하던 내가 어느 날 무심결에 툭 내뱉은 말 한마디, ‘지리산둘레길, 완주하고 싶다.’
그 말에 남편은 ‘가자, 가면 되지.’ 신나서 구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추진력에 겁도 났지만, 자존심상 취소하기는 싫었다.
그렇게 엉겁결에 끌려온 3코스 인월-금계 구간, 소풍 온 아이마냥 들떠서 아무도 없는 제방길을 둘이서 장난치며 걸었다. 길가에 박주가리를 툭 터뜨려서 낙하산처럼 떨어지는 홀씨를 볼 때는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논두렁길, 산길을 걷다 보니 어릴 적 자랐던 기억들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어릴 적 이야기로 한참을 걷다 보니 풍경도 정겹지만, 다리의 통증도 오고 지치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스탬프를 발견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포켓북에 찍고 혹여 번질까 휴지로 살포시 덮은 채 남편과 서로 마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등구령 쉼터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나니 그대로 주저앉아 쉬고 싶었지만 계속 가야 하기에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끝도 보이지 않는 길에 발가락은 부어올랐고, 마을 길을 경유 하여 먼 길을 돌아가는 느낌에 길이 더욱더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돌아가자 할까.’, ‘그만 가자 할까.’ 마음속 갈등이 일었다.
해는 어느새 어둑어둑 지기 시작했고, 그토록 찾던 하늘길을 찾지 못해 제 길을 찾느라 몇km 더 걷다 보니 입은 자연스레 삐죽 내밀어지고, 속으로 온갖 원망을 하는데도 내 짝꿍은 마냥 신이 난 모습이었다.
하지만 끝내 하늘길을 찾아서 풍경을 사진으로 담을 때는 모든 원망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렇게 기분 좋게 택시를 타고 시작점으로 돌아올 때, 기사분의 추천으로 맛있는 고기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첫걸음이 너무 힘들었지만, 해냈다는 성취감 또한 컸다. 그렇기에 다음부터는 두 구간씩 걷고 오기로 서 일주일 후, 아침 일찍 다시 둘레길로 향했다.
이제 한 개의 도장이 찍힌 스탬프 북을 쳐다보니 ‘언제 다 찍을까?, 찍을 수는 있을까?’ 슬그머니 겁이 났다.
‘가다가 못 걸으면?, 무릎 통증으로 걷지 못하면?’ 염려스러운 얼굴로 집을 나서는 나에게 남편은 이제 당신의 발은 우리가 걷는 거리에 맞춰진다고, 23km 걸으면 그 거리에 맞춰진다고 했다. 그 말이 왠지 힘이 되어주었다.
벅수가 나타나면 아는 사람 만난 듯 반가웠고, 정겨웠다.
재를 몇 개씩 넘어 정겨운 마을 길을 걷다 보니, 추운 날 걸어서 어떡하냐며 걱정해주시던 내 유년시절 외할머니 모습을 닮으신 어르신의 따스한 미소에 괜스레 이른 시간 마을 길을 경유 해서 동네 개들이 짖을까, 마을 분들에게 폐가 될까, 맘졸이며 지나갔다.
긴 산길을 걸을 때는 쌓여있는 낙엽을 주워서 예전 CF 한 장면처럼 서로에게 던지며 장난을 치느라 지루하지 않았다.
그렇게 3번째 둘레길을 걸을 무렵부터 어느새 설레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참으로 놀라웠다. 괜히 하자고 했다는 두려운 마음보다는 이번에는 어떤 재를 넘어갈까? 어떤 풍경을 만날까 등등 조금씩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어둑할 때 도착해서 어느새 추워진 날씨에 핫팩을 주머니에 넣고 서로 손을 꼭 잡은 채 어두운 들길을 전세 낸 거 마냥 둘이서 자박자박 걷는 시간은 이제껏 열심히 애들을 키우느라 바빴던 일상에 편안한 힐링 같은 시간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산등성이에 매번 앞질러 가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남편 때문에 떡을 좋아하지 않지만, 간식으로 떡을 가지고 가기도 했다.
그 후로 남편은 나에게 떡 좋아하는 호랑이로 불리고 있다.
갑자기 내린 비로 인해 마을 회관 처마 밑에서 오돌오돌 떨며 비가 멈추기를 고개 빼고 기다리던 시간, 새로운 구간 정비로 인해 구간이 폐쇄된 곳을 기어이 옆으로, 옆으로 원래 구간보다 더 걸어서라도 정석대로 걷는 게 참된 완주라 여기며 진흙이 신발에 들러붙어도 좋아했다.
마을 주민들이 예쁘게 그려놓은 담벼락도, 대나무 숲을 스치던 기분 좋던 바람 소리도, 가쁜 숨 몰아쉬며 오르던 재들도, 초록빛으로 반짝이던 녹차 밭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건 없었던 것 같다.
산불로 인해 타버린 나무들, 타다가 겨우 불길을 견뎌서 살아남은 나무를 어루만지며 참 애썼다. 고생했다, 견디어줘서 고맙다는 말로 위로가 될까마는 안타까움에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걷는 동안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거의 만난 적이 없다. 계절 탓도 있었겠지만, 센터도 재정비 기간이라 그런지 못내 아쉬웠다.
빛바랜 예능 촬영지 표지판에서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고, 좀 더 일찍 올걸, 문을 닫은 쉼터와 가게를 보면서 사람들이 다시 이곳을 찾아서 활기차고 생동감 있는 둘레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낡고, 훼손된 벅수를 간혹 만나면 짠한 마음이 일었다.
어느덧 스탬프가 하나둘씩 채워지고, 노란 산수유가 활짝 핀 계절에 마지막 구간을 완주했다. 산수유 시배지에서 사람들을 보며 남편과 서로 마주 앉아 이제껏 둘이 전세 냈던 둘레길을 다른 사람들이 많이 걷겠구나 하며 웃었다.
그렇게 센터를 찾아서 상기된 표정으로 완주증을 발급받으면서 벅차오르는 희열감을 느꼈다.
사람마다 각자의 능력도, 기쁨을 느끼는 것도 만족감을 느끼는 정도도 다 다르지만 나에게 있어 둘레길 완주는 참으로 큰 기쁨이었다. 손잡아주고 웃겨주고 장난치며 같이 걸어주었던 남편이 예쁘게 보이고, 사랑스러웠던 시간이었다.
그 이후로 차를 타고 가다가도 숲으로 이어진 길을 보거나 지금처럼 벼가 익어있는 풍경을 보거나 밤송이가 떨어지는 나무를 보면 차에서 내려서 저 길을 걸어야 할 것 같은 강한 이끌림을 느끼곤 한다.
걷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 볼 수도 없는 풍경들이다 차를 타고 가면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들이기에 가끔 TV에서 지리산둘레길 이야기라도 나오면 우리 걸었던 곳이라며 그때의 기억 한 자락씩 꺼내어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둘레길을 완주한 후 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 아닌 홍보를 한다.
일단 가보라고 걸어보면 너무 좋을 거라고 남편 또한 지인들에게 너무 좋다고 부부끼리 많은 대화도 하고 서로의 발걸음에 맞추어서 걷는 시간이 소중하다고 그 시간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고 걷는 걸 싫어하던 나 자신이 가끔 남편과 함께 산으로 향한다.
산을 잘 오르는 사람들처럼 빨리 가지는 못해도 나에게 맞춰서 천천히, 꾸준히 걸어본다.
왜냐고? 나 이래 봬도 지리산둘레길 완주한 여사님이거든!!!
소중한 추억을 남기게 해준 둘레길을 정비해주고, 관리해주는 사단법인 ‘숲길’ 관계자분들과 마을 길을 기꺼이 내어주신 주민분들에게 모두 감사를 표하며,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많은 이들이 행복한 기운을 받았으면 좋겠다.
항상 누구나 꿈꾸지만 절대 아무에게나 깃들지 않는 그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부른다. 기적과 같은 순간이 내게도 있었다. 지리산을 눈으로 보고, 두 발로 걸으며, 가슴 안에 품자 기적과도 같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결혼 후 소박한 행복을 꿈꾸던 내게 ‘자궁내막암’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병이 찾아왔다. 30대 초반이라는 이른 나이에 암을 얻은 것도 모자라, 아이를 낳지 못할 거라는 의사의 말에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일단 아이를 갖기 위해 수술 대신 호르몬 치료를 선택했지만, 호르몬이 감정을 교란하는지 시도 때도 없이 불안해지고, 의기소침해지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문득 바라본 거울 속에서는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표정의 내가 서 있었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뿐, 돌파구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남편이 지리산으로 내려가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오자고 제안했다. 병원 치료도 좋지만, 지리산이라는 천혜의 자연에 묻혀 지친 몸과 마음을 쉬고 자연이 지닌 치유의 힘을 빌려보자는 것이었다.
나를 위해 회사에 장기 휴직까지 신청한 남편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함께 지리산에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지리산둘레길 주천-운봉부터 시작해 지리산 구석구석을 여행하듯 둘러보고, 천천히 올라오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름하야 ‘지리산 치유여행’이었다.
그렇게 나는 휘몰아치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리산과 만났다. 주천-운봉구간이 위치한 전북 남원으로 내려가자, 저 멀리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지리산 능선이 우리를 반기듯 수려한 풍경을 뽐내고 서있었다.
주천의 솔숲 길로 들어가자 코끝에는 나무향이, 손끝에는 푸근한 숲의 감촉이 전해져 왔다. 남편을 따라 두 팔을 벌리고 깊은 심호흡을 하며 지리산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기분도 같이 상쾌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지리산 품속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흘러내리기 시작한 등줄기의 땀방울을 산바람이 깨끗이 씻어내 주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남편은 숲에서 퍼지는 피톤치드가 몸 안의 독소를 해독시켜준다며 내게 심호흡을 해보라고 말했다. 우리는 바위에 걸터앉아 빽빽한 소나무 숲에서 쏟아지는 천연 피톤치드로 샤워를 했다. 잠시 눈을 감은 나는 숲과 함께 호흡했다. 걱정, 불안, 원망의 마음을 지리산 숲길에 묻고 나니, 불덩이 같던 마음이 조금은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주천-운봉-인월을 천천히 둘러가며 걸었을 뿐인데, 몸이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그날 저녁은 민박집에서 꿀맛 같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민박집 아주머니가 차려주는 지리산 밥상을 받았다. 지리산만큼이나 푸근한 밥상은 장녹나물, 산도라지, 더덕, 박나물, 취나물, 고추무름, 뽕잎, 죽순, 고사리, 우엉, 방풍잎나물, 곰취, 풍년초나물, 머위나물 등의 다양한 나물들로 채워졌다. 민박집 주인 부부가 지리산에서 직접 따거나 손수 농사지은 나물들이었다. 눈으로 보고만 있어도 푸릇푸릇한 자연의 색감이 입맛을 끌어당겼다.
지리산이 내어준 나물들은 내 몸 곳곳으로 퍼져 몸 안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다. 민박집에서 먹는 식사는 그야말로 보약이 따로 없었다.
보약 한 상을 받은 우리는 지리산 인월-금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쓴 덕에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팠지만 마음만큼은 더 없이 경쾌했다. 체력적으로 지칠 때면 남편이 내 손을 잡아준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한참을 걷던 우리는 숲 속 길가에 기대어 앉아 민박집에서 싸준 도시락으로 허기를 달랬다.
그날 밤 우리는 민박집에서 바비큐 파티를 했다. 민박집 마당에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나눠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도시에서는 별 보기가 어려웠는데, 지리산에는 별이 참 많네.”
남편의 말에 고개를 들어 바라본 지리산의 밤하늘은 거짓말처럼 맑고 투명했다. 초롱초롱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보고 있으니 복잡했던 마음까지 투명해지는 것 같았다.
지리산에서 보내는 시간은 느리게, 충만하게 흘러갔다. 우리는 그렇게 지리산에 서서히 물들어 갔다. 하늘이 너무 원망스러워 통곡을 하고 싶을 때면 지리산이 주는 위로의 손길로 마음을 달랠다.
느린 걸음으로 지리산 숲길을 걷다 보니 몸속에 생명력이 샘솟고, 맥없이 풀어져 있던 다리에 힘이 실렸다.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는 희망까지 한 아름 품을 수 있었다. 지리산의 따스한 손길은 나로 하여금 이른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지리산둘레길을 걸을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 결과 지리산둘레길 21개 코스를 모두 완주할 수 있었다.
그 후 우리는 지리산 천왕봉에도 올랐다. 천왕봉에서 바라본 일출은 우리에게 숨이 막힐 정도로 가슴 벅찬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일찍이 남명 조식 선생은 ‘하늘은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흔들림 없이 장엄한 지리산을 닮아가고 싶었다.
일출을 바라보면서 나는 얄궂은 운명 앞에 가슴앓이를 하거나, 세상을 원망하는 것은 부질없는 없는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는 화엄사도 찾아갔다. 각황전에 들어가 마음 속 깊이 간직해 두었던 말들을 꺼내어 진심을 다해 108배를 올렸다. 암 덩어리가 사라져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이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화엄사에 깊이 사무쳤다.
108배를 마친 후에는 대웅전에 앉아 욕심을 내려놓고 그간 살아온 삶을 반추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부부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의 사연 가득한 기도가 천년의 무게를 이고 대웅전 곳곳에 아로새겨 있었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산사의 장엄한 기운이 소란스러운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남편이 다정스레 손을 잡아주며 “기회가 되면 꼭 지리산에서 템플스테이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반년여에 걸쳐 지리산에 묻혀 지낸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새 일상을 시작했다. 그때만큼 평범한 일상이 절실하고 감사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지리산에 다녀온 덕분에 내 몸은 조금씩 치유돼 갔다. 자궁내막 시술을 거치며 완치판정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1년여 후 자연임신이라는 기적이 우리를 찾아왔다. 의사는 우리를 향해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지리산이 우리 부부에게 기적을 선물해준 것이다. 아이가 우리를 찾아왔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아 아이의 첫 초음파 사진을 100번 넘게 들여다보았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의 평온을 누리기까지 지리산의 도움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일 년에 두어 번씩 지리산을 찾는다. 넘기 힘든 현실과 맞닥뜨릴 때마다 지리산은 우리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시간아 조금만
시간아 조금만 천천히 가주겠니,
이제 막 깨어난 새싹들이 피어나 꽃을 피우려 하고,
지리산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들이
향긋한 봄 내음 맡으려 나오고 있으니
황급히 준비하지 않도록
시간아 조금만 기다려 주렴
시간아 조금만 천천히 가주겠니,
저 하늘 높이 떠 있는 해님이 이 곳을 비추니
각각이 푸르른 녹색들이 빛이 나
해님 덕분에 눈이 부셔서 그런지, 아니면 이 곳이 아름다워 그런지,
도저히 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으니
지금 이 눈이 부신 한여름 내 눈에 담을 때까지
시간아, 조금만 기다려 주렴
시간아 조금만 천천히 가주겠니,
산들이 다양한 색색으로 단장을 하려한다,
예쁘게 단장하여 내 눈을 즐겁게 해주고
내 발밑에 다채로운 색으로 새로운 길을 깔아주려고 하니
가을이 주는 이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도록
시간아 조금만 기다려 주렴
시간아 조금만 천천히 가주겠니,
지리산이 피곤한 모양인지 잠시 잠들려고 하는구나
하늘도 그런 마음을 아는 것인지
새하얀 이불을 덮어주어 따스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니 조금 더 잘 수 있게
시간아 조금만 기다려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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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24일 24:00 부터
5월 25일 06:00 까지
시스템 업그레이드 및 점검 작업으로
지리산둘레길 홈페이지가 일시 중지됩니다.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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